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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왜때문에 두바이에 살고 있는가?

by 어느외노자 2024. 6. 14.

 

기도하는 무슬림, 카이트비치. 두바이

 

내가 아랍문화에 관심이 있어서

두바이에 살고있다고 하면,

아랍인이건 외국인이건,

다들 이해를 전혀 못했다.

한국인은 더 말할것도 없지만,

한국인은 일단 아랍문화 관심 이전에

가난한 디지털 노마드의 비싼나라 살기

를 더 이해못하는 듯했으므로,

아랍은 차라리 나중문제다.

 

아무튼 아랍인과 외국인이

아랍관심이 두바이와 사맛디아니하야

를 외치는 이유는 당연히도

두바이가 아랍중에서 가장, 

아랍색이 적은곳이기 때문이다.

 

누가 그걸 모르나?

당연히 나도 아랍색을 찐으로 느끼려면,

다른 옵션이 한가득 존재하는 것은 안다.

그 나라들은 심지어 물가도 싸지않나?

 

그런데,

내가 또 그렇게까지는 안한 이유는,

뭔가 좀 피곤스러웠기 때문이다.

 

그 물가 싸고 아랍색 가득한 나라들은

아무래도 치안이 두바이만 못하고

대중교통도 두바이보다 불편하며,

어딜가든 시선을 느껴야 하고

아랍어든 불어든 하나는 해야한다,

이미 영어만으로 머리가 터지는데

굳이 새 언어 추가할 마음은 없다, 

그리고 저 위에 얘기한 불편함들을

굳이 감수할 생각도 없다.

플러스,

나는 이번에는 좀 글로벌한 지역에 살고싶었다.

 

아랍색이 가득하면 낭만은 있을지 몰라도,

현실은 불편함과 소수자로서 따가운 시선,

전혀 안되어버리는 의사소통,

이 모든것을 다 감수해야 하는데

내 아랍에 대한 열정은 

도저히 그정도까진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1. 외국인이 살기 편하고 

2. 영어만 써도되며 

3. 대중교통 잘되어있는

(한국보다는 못하지만 아랍나라 중에서는)

아랍나라를 고르다보니 

두바이가 낙점된 것이다.

 

비슷한 나라로는 카타르도 있는데,

카타르는 아무래도 아직

두바이를 못따라온다.

아직 거기는 복장제한도 있는나라다.

 

al twar 도서관, 두바이. 진짜 건물하나는 참 이쁘게 짓는다.

 

 

 

잼민이 시절 제일 좋아했던 시 중 하나는

유치환의 생명의 서였다.

 

생명의 서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灼熱)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悔恨)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내 아랍덕질은 사실,
더 꼬꼬마시절이었던 유딩때 
알라딘과 신밧드의 모험으로 시작했고,
초딩 중딩때 읽었던 신일숙의 순정만화
아르미안의 네딸들, 에시리쟈르에서
극에 달했다가
고딩때 이 시를 배우면서 정점을 찍은듯하다.
 
삶이 힘들면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가자고 하지 않는가?
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대체 어떻게 뿌리친단 말인가?
 
한번 뜬 백일이 불사신같이 작열하는 곳,
나는 저 문장을,
진심 레알 찐으로,
매일매일 두바이에서 겪고있는데,
그래서 그 50도의 태양 한가운데에 서 있어도,
저 문장만 생각하면 힘이난다,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내가 비록 사막 한가운데에 살진 않지만,
한낮에 정말 아무도 안돌아 다니는데,
그 50도 태양속 한낮에 서서 
온몸을 태우고 있을때,
기도시간을 알리는
구슬픈 아잔 소리라도 들려오면,
이 구절이 생각나며 그 운치가 죽여준다.
 
대부분의 비무슬림들은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 노래소리를
굉장한 소음으로 생각하던데,
나는 아니다.
난 비무슬림이지만,
아잔소리를 들을때마다,
"아 그래, 난 성공한 덕후야! 성덕이야!"
라는 생각이 들뿐이다.
 
 
만화가 신일숙은
나만큼이나 아랍 빠순..이신 것으로 유명해서
아랍배경 작품만해도 
천일야화, 에시리쟈르, 아르미안의 네딸들
세가지나 된다.
 
저 아르미안의 네딸들과 에시리쟈르는
한창 사춘기였던 내 잼민이 시절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는지,
만화 속에서 그들이 읊조렸던 몇가지 아랍어 문장,
인샬라, 알함둘릴라, 우히부브카 등은
어린마음에 굉장히 강렬하게 남았다.
 
그리고 실제로 아랍에 살고있는 지금,
저 인샬라와 알함둘릴라를
굉장히 많이 듣고있는데,
(우히부브카는 들은 적 없음.)
들을 때마다 아잔소리와 마찬가지로
성덕으로서의 희열이 느껴지지 않을수 없다.
 
 
덕후란 원래,
일반인은 이해못하는 것에 돈을쓰고
혼자 행복해하는 종족이 아니던가?
그런 면에서 나는 진정
뼛속까지 덕후라고 하겠다.
 
성공한 덕후는 행복하기에,
두바이에서 이 모진 고초를 겪어도,
마음 한구석의 로망은 죽지않았다,
 
물론 내 덕력 레벨이 좀더 높았다면
두바이에 타협하지 않고 
위에말한 더 아랍색 강한
찐아랍나라들로 갔겠지만,
이런걸보면 나도 덕력 상급은 아닌듯하다.
 
그래도,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와있는 
현실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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